Tuesday, October 19, 2010

In your absence


〈안정숙/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소설을 쓰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가 책을 내면, 그 친구나 동료들이 맨 먼저 하는 일은 이 글 어디에 내 모습이 있는가를 찾기. 재미삼아 찾는 척하지만, 내가 어떻게 묘사되는지, 단순히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악역인지, 독자의 공감이나 동정을 받는 인물인지 등등이 궁금한 것이다, 속내는.

직접 출연하지 않는 경우, ‘나’는 흔히 화자나 작가의 자리에 동승하여 흐름을 관찰한다. 그러다가 때때로 이런 저런 인물과 상황에 슬그머니 빨려들거나 착지하여 롤플레잉 게임을 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을 할 대목에 부딪힐 때도 있다. 많다. 그렇지만, 가부장 사회의 여성이자, 식민지배를 경험한, 역사적 피해를 입었음을 주장할 수 있는 국가의 시민인 ‘나’는 작품 속 ‘요구하는 자’에게 연대감을 느끼기 십상이다. 그런데 최근 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일본의 영화평론가 사토 다다오가 ‘포커스 온 아시아’라는 주제로 18년째 열고 있는 후쿠오카영화제에서다. 개막식 다음 날, 첫 영화로 나는 내겐 아직 낯설다는 이유로 몽골영화를 선택했다. 작품과 감독에 관한 정보를 미처 읽지 못한 채 제목 하나만 달랑 확인하고 객석 하나를 차지했다. 제목은 ‘당신이 없는 사이’(In Your Absence).

비디오로 찍은 영화다. 울란바토르에 사는 젊은 부부가 등장한다. 아내는 임신중이고, 음악을 하는 남편에겐 수입이 없다. 출산비용과 태어날 아기의 양육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는 얘기. 남편은 돈을 벌러 한국으로 가기로 한다. 빌린 3,000달러를 중개인에게 바치고 한국비자를 얻는다.

순간 서늘한 기운이 내게로 밀려왔다. 드디어, 한국의 이주노동자에 관한 영화가 그 노동자들의 나라에서 만들어지는구나,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바트 울지 감독의 ‘당신이 없는 사이에’는 “몽골 최초의 해외노동자에 관한 영화”였다. 이것이 한국의 이주노동자에 관해 그 노동자들의 나라에서 만든 최초의 영화인지 어쩐지는 나는 모른다. 어쨌든 그들이 카메라를 들고 ‘코리안 드림’을 해부하기 시작한 건 분명했다. 나는 질문당하는 자의 심정으로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했다. 다같은 단군의 자손임을 긍지로 안고 살아온 우리 대한민국이 다민족, 다문화 사회로 들어섰음을 요즘은 많은 이들이 인정하고 있다. “서울에만 2만명의 몽골사람이 산다”고 주인공도 말하지만, 이주노동자들과 나아가 이주결혼여성들은 놀랄 만큼 빠르게 늘어났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다름’에 익숙하지 않다. 이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공존해야 한다는 인식을 제도로서 구현하지도 못했다. 객석에서, 반추한 우리의 상황.

서울에 온 주인공은 월 80만원과 숙소가 제공되는 공장에 취업하고, 비자를 얻으려 빌린 돈을 고국의 아내에게 보내려다 사기를 당하고, 불법취업자로서 경찰에게 쫓기기도 하고, 당연히 고향의 가족을 그리워한다. 그 사이 태어난 아들은 ‘당신이 없는 사이’ 무럭무럭 자란다. 이 흩어진 가족의 꿈은 집을 장만할 돈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을 찾은 이주노동자들의 전형적인 이야기들. 그런데 주인공은 산재로 시력을 잃는다. 영화는 이주노동자, 그들의 입장에서 해외근로자의 노동현실을 직설적으로 고발하고 분석하는 대신, 멜로드라마 형식을 취한다. 그 덕택에 나는 일본인 관객들 사이에서 혼자 공격당하는 듯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소환기능을 실감한 90분이었다.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No comments:

Post a Comment